국방부가 불온 도서 목록을 선정했다 하니 생각나는 일이 있습니다. 제가 군 생활할 때인데 1994년이었을 것입니다. 휴가 복귀할 때 책 몇 권을 사 들고 들어 왔는데 그 중에 한 권이 정보 장교에게 압수를 당했습니다. 그 책의 제목은 '삼국 통일과 한국 통일'이라는 상하권 두 권으로 된 제법 두꺼운 책이었습니다. 도올 김용옥씨가 지은 책입니다. 아니 엄밀히 말해서 김용옥씨가 엮은 책입니다. 여러 글이 묶인 책인데 김용옥 씨가 직접 쓴 글은 하나 뿐이고 나머지는 저자가 다 다릅니다. 아무튼 이 책을 압수 당한 이유는 오직 하나 책 제목에 '통일'이라는 단어가 들어가 있기 때문이었습니다. 사실 저는 많이 황당했습니다. 저도 바보가 아닌 이상 만약 이 책이 좌파적 시각을 가진 책이라면 제가 부대로 가지고 들어가지도 않았을 것입니다. 김용옥씨야말로 전형적인
부르주아 지식인인데 이념적으로 문제시 될만한 내용이 있을리 만무했습니다. 그러나 단순한 정보 장교는 무조건 '통일'이 들어간 책은 안 된다는 것이었습니다.
결국 저는 책을 압수 당했다가 전역할 무렵에야 돌려 받을 수 있었습니다. 이번에 국방부가 불온 서적 목록을 만들었다는 소식을 듣고 저는 과연 그 목록을 만든 실무자가 그 책들을 읽어 보기나 했을까 싶습니다. 아마 제 군 시절 정보 장교처럼 읽어 보지도 않고 그냥 제목만 보거나 어디서 주워 들은 이야기를 가지고 선정했을 것이 틀림없습니다. 그 목록 중에 '나쁜 사마리아인들'이 포함되어 있다는 사실에 웃음 밖에 나오지 않았습니다. 만약 이 책이 좌파 서적이라면 케인즈도 빨갱이가 될 판입니다.
국방부. 고맙습니다. 군 시절의 추억을 떠 올리게 해 줘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