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애굽기 21장 5절, 6절에 다음과 같은 규정이 있습니다.
"만일 종이
분명히 말하기를 내가 상전과 내 처자를 사랑하니 나가서 자유인이 되지 않겠노라
하면 상전이 그를 데리고 재판장에게로
갈 것이요 또 그를 문이나 문설주 앞으로
데리고 가서 그것에다가 송곳으로 그의 귀를 뚫을 것이라 그는 종신토록 그
상전을
섬기리라"
율법에는 종이 육 년 동안을 섬긴 후 제 칠
년에는 자유를 주라고 규정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정말 이 규례에서 특별한
것은 스스로
해방되기를 거부하는 종이 있었다는 사실입니다. 그 이유는 두 가지였습니다. 첫째는 주인을
너무 사랑해서 둘째는
처자를 너무 사랑해서, 주인이 아내를 주었을 경우 스스로 계속
종이 되길 소원하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종살이 도중 결혼한 처자는
주인에게 소유권이 있어
함께 데리고 나갈 수가 없었습니다. 이 선택은 전적으로 본인의 자유에 속했습니다.
처자를 사랑해서 이런
선택을 할 수 있다는 점은 쉽게 수긍이 갑니다. 그런데
주인을 사랑해서 자유를 뿌리치고 스스로 종이 되기를 원한다니 상식적으로
잘 이해가 가질
않습니다.
그러면 이런 선택을 받은 그 주인은 어떤 주인일까요?
그 주인은 분명 인자하고 자비로운 주인일 것입니다. 그는 공의롭고 만사를
공평하게 다루는
주인일 것입니다. 그 주인은 노예를 노예를 여기지 않고 친 자식처럼 친
형제처럼 아끼는 주인일 것입니다.
종이 이렇게 영원히 종이 되길 원하는 경우 재판장에게 가서 문에 귀를 대고 송곳으로 귀를 뚫도록 했습니다. 귀를 뚫는다는
것은 영원한 예속을 상징합니다. 오늘날로 치면 군대에서 "말뚝 박기"에 비유할 수 있습니다. 말뚝을 박는다는 것은 군대에 장기
복무 지원하는 것을 말합니다. 군에서 다른 건 강요하지만 장기 복무 선택만큼은 본인의 자유에 맡깁니다. 다들 말뚝 박기를 극도로
싫다고 하지만 그래도 그 중에 군대가 좋아서 장기 복무를 신청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장기 복무를 지원하기 전과 후는 군인이란
점에서는 차이가 있지만 그 신분에 있어서 본질적인 차이가 있습니다. 지원 전에는 의무 복무 군인이었나 지원 후에는 자원하여
복무하는 군인 즉 직업 군인이 됩니다. 귀를 뚫기 전이나 후나 종이라는 점에서는 동일하지만 귀를 뚫은 후에는 본질적으로 다른
종이 됩니다. 의무에 의한 종이 아니라 자원하는 종이 되는 것입니다. 자유 가운데 스스로 속박되기를 결정한 종이 되는 것입니다.
자원하는 종의 동기는 무엇입니가? 바로
사랑 때문입니다. 사랑은 참으로 위대합니다. 사랑은 자유를 기꺼이 자유를 포기하게
만들기도 합니다.
사랑은 종이 되기를 기뻐하도록 만드는 힘이 있습니다. 의무에 의한 종은 6년이라는
의무 복무 기한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자원하는 종은 그 상전을 종신토록 섬기게 됩니다.
사도 바울은 로마서 1 장에서 자신을 종이라고 자랑스럽게 소개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죄의 빚을 진 자였습니다. 도저히
갚을 수 없어 인생이 파산했습니다. 갚기는
커녕 날마다 그 채무가 늘어났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이런 나를 값 주고
사셨습니다.
내 대신 댓가를 지불하셨습니다. 십자가에서 흘리신 어린 양의 보혈로서 나를 사셨습니다.
그러므로 나는 그리스도께서
값 주고 사오신 종입니다.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의무가 있는
종입니다. 고린도 전서 6장 19b,20는 말합니다. "너희는 너희
자신의 것이 아니라 값으로
산 것이 되었으니 그런즉 너희 몸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라" 그러나 여기에
그치면 안 됩니다.
우리는 또한 자원하는 종입니다. 주인을 사랑하기 때문에 처자를 사랑하기
때문에 귀 뚫은 종이 된 것처럼 주님을 사랑하고 주님의
몸된 교회를 사랑하기
때문에 스스로 종이 되기를 자청한 사람이 바로 우리들입니다. 우리는 모두 귀
뚫은 종들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