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시록 13장 16절에 보면 땅에서 나온 짐승은 모든 자들로 그 오른손이나 이마에 표를 받게 합니다. 여기에는 작은 자나 큰 자나, 부자나 가난한 자나, 자유인이나 종이나 할 것 없이 예외가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자기 종들의 이마에 인을 치시자 사단도 따라서 자기 종들의 이마에 낙인을 찍도록 합니다. 이 짐승의 표는 받아도 되고 안 받아도 되는 장식품이 아닙니다. 누구든지 이 표를 가진 자, 곧 그 짐승의 이름이나 그 이름을 나타내는 숫자로 표가 찍힌 사람이 아니면 아무도 팔거나 사거나 할 수 없습니다. 이 표가 없으면 정상적인 경제 생활, 사회 생활을 할 수 없도록 사회 경제 시스템이 구축되었습니다. 사람들은 설령 짐승에게 경배할 마음이 없다 할지라도, 다만 먹고 살기 위해서라도 그 표를 받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세상 누구도 다른 사람과 내가 가진 자원을 서로 교환하지 않고 혼자 힘으로 살기는 참 어렵습니다. 그런데 이 짐승은 표를 매개체로 해서 성도들을 사회로부터 소외시키고 배제시켜 버려서 결국 극심한 고통을 빠트립니다. 여기서 이 표에 적혀 있다는 육백육십육이라는 숫자에 대해 언급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한 동안 이 숫자가 바코드라는 설이 유행한 적이 있습니다. 말세에 모든 사람들의 이마나 손목에 생체 인식용 바코드를 이식하게 될 것이고, 이 바코드가 없으면 전자 결제를 할 수 없게 될 것이라고 주장했습니다. 이때 이 바코드의 숫자가 666이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이론의 치명적인 약점은 누구나 다 666이란 코드를 받으면 서로 식별이 안 되기 때문에 결제 수단으로서 가치가 전혀 없다는 것입니다. 게다가 요즘은 바코드 시스템에서 무선으로 동작하는 RFID 시스템으로 넘어가는 중에 있기 때문에 이 이론은 곧 폐기 처분될 것 같습니다. 하나님께서 성도들의 이마에 인치신 표가 내적이고 상징적인 것처럼, 이 666이라는 표도 내적이고 상징적인 것입니다. 이 표가 우리 시대 외적으로 나타나면 뇌물과 청탁으로 일을 해결하려는 뿌리 깊은 관습, 오직 부자가 되려고 하는 재테크 열풍, 혼전 순결을 가볍게 취급하는 문란한 성문화 등등이 될 수 있습니다. 이런 대열에 같이 끼지 않으면 출세길이 막히기도 하고 왕따를 당하기도 하고 바보 취급을 받기도 합니다. 여러분은 어떻게 하겠습니까? 짐승의 표를 받으시겠습니까? 아니면 당장 어떤 불이익이 있다 하더라도 이를 거부하시겠습니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