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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음이 먼저 만국에
복음이 먼저 만국에
말씀: 마가복음 13:1-13
요절: 마가복음 13:10
또 복음이 먼저 만국에 전파되어야 할 것이니라
이제까지 우리는 Summer Bible Camp를 통해 예수님을 알게 되고, 충만한 죄사함의 은혜를 입었습니다. 우리가 일생 구원의 주 예수님을 잊지 않고 늘 예수님과 교제하는 복된 삶을 살 수 있길 기도합니다. 그런데 이 시간 이 은혜에 이어서 한가지를 더 생각해 보고자 합니다. 그것은 우리가 사는 이 세상은 과연 어떻게 될 것인가 하는 것입니다. 인생을 대충 살거나 막 살고 싶으면 생각해 보지 않아도 됩니다. 그러나 예수님께 구원받은 자의 삶은 그럴 수 없습니다. 구원받은 자로서의 나의 삶은 어떠해야하는지, 그리고 내가 사는 이 세상은 어떻게 될지, 그 역사가 어떻게 될지 생각해보지 않을 수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주관하고 계신 이 역사의 흐름과 방향을 알아야 헛다리 짚지 않고 분명한 인생 목적을 가지고 가장 가치 있는 일에 우리 인생을 투자할 수 있습니다. 오늘 말씀은 바로 인류의 종말에 관한 말씀입니다. 이 말씀 속에서 ‘세상이 어떤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으며, 이런 역사의 흐름 속에서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를 배울 수 있습니다. 우리가 오늘 말씀을 통해 성경에 기초한 역사적 안목을 가지고 삶의 분명한 방향과 목표를 발견할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Ⅰ. 말세의 징조 (1-9,11-13)
1절을 보십시오. 예수님께서 성전에서 나가실 때 제자 중 하나가 으리으리한 성전을 보고 감탄하며 말했습니다. "선생님이여 보소서 이 돌들이 어떠하며 이 건물들이 어떠하니이까?" 성전은 당시 건축 예술의 꽃이요 히브리 문화의 금자탑이라고 불릴 만큼 화려하고 웅장했습니다. 이 성전은 헤롯 왕이 유대인들의 환심을 사기 위해 지은 건물로서 BC 20년에 건축을 시작하여 AD 64년에 완공되었습니다. 그 입구에는 12m나 되는 그리스산 대리석 기둥들이 서 있었습니다. 크기도 고대 예루살렘 전체 면적의 1/6을 차지할 정도로 대단했습니다. 성전을 멀리서 보면 흰 대리석 산처럼 보였고, 해가 떠서 비추면 눈이 부시어 쳐다볼 수 없을 정도로 광채를 발했습니다. 갈릴리 촌구석을 누비던 제자들은 이런 성전의 위용에 압도당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제자들에게 이 성전이 더욱 아름답고 멋있게 보였던 이유는 따로 있었습니다. 이제 예수님께서 곧 왕이 되시고 이 성전을 중심으로 메시야 왕국이 세워질 때 자신들이 장관이 되어 이 성전을 멋있게 걸어 다닐 것을 상상했기 때문입니다. 이는 생각할수록 가슴이 뛰고 신나는 일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이런 제자들에게 무엇이라고 말씀하셨습니까? 2절을 보십시오. "예수께서 이르시되 네가 이 큰 건물들을 보느냐 돌 하나도 돌 위에 남지 않고 다 무너뜨려지리라." 예수님께서는 성전 건물을 보고 놀라는 제자들에게 더 놀라운 말씀을 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크고 견고하고 화려한 성전이 돌 하나도 돌 위에 남지 않고 다 무너질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세상에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있단 말입니까? 예수님께서 이 말씀을 하신 지 약 40년 후, 놀랍게도 이 말씀은 글자 그대로 실현되었습니다. AD 66년 유대에서 로마에 대한 대규모 반란이 일어났습니다. 그러자 로마 원로원은 디도(Titus) 장군에게 8만 명의 군단을 주어 이 반란을 진압하도록 했습니다. AD 70년 디도는 로마 군병들에게 성전 파괴를 명령했습니다. 이때 성전의 돌들 사이에 금덩이가 숨겨져 있다는 소문이 돌아 성전은 돌 하나도 돌 위에 남지 않고 산산이 파괴되었습니다.
제자들과 예수님은 다 함께 같은 성전 건물을 보았습니다. 그런데 제자들은 그저 성전의 모습을 보고 경탄하기에 여념이 없었던 반면, 예수님께서는 성전의 멸망을 예고하셨습니다. 어째서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이 미처 보지 못했던 성전의 멸망까지 내다보실 수 있으셨을까요? 이는 예수님께서 성전의 화려한 겉모습 뒤에 감추어진 성전의 부패한 내면을 보셨기 때문입니다. 성전은 하나님과 만나는 거룩한 곳이요 기도하는 곳이어야 했습니다. 그러나 당시 성전에서는 기도 소리는 사라지고, 장사꾼들의 호객 소리만 가득했습니다. 종교지도자들은 화려한 옷을 입고 권위를 내세웠지만 뒤로는 재물과 권력을 탐하는 위선자들이었습니다. 예수님은 성전의 이런 부패를 보시고 분노하시고 그 안에 장사꾼들을 다 쫓아내시기까지 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이 이러셨으니 하나님 아버지의 분노는 어떠하겠습니까?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뼈 속까지 깊이 부패한 성전에 장차 임하게 될 하나님의 진노와 심판을 보신 것입니다.
우리는 이 예수님을 통해서 세상을 보는 어떻게 보아야 하는가 영적 안목을 배우게 됩니다. 인류 문명은 눈부시게 발전하고 있습니다. 요사이 인류의 과학 기술은 고도로 발달되어 우리의 상상을 넘어 서고 있습니다. 영국에서 1998년 세계 최초로 체세포 복제에 의한 복제양 돌리가 태어났습니다. 이러한 유전공학의 발전은 멀지 않은 장래에 인간의 복제까지도 가능하다고 보고 있습니다. 얼마 전 황우석 박사의 인간 배아 복제 기술과 관련하여 온 나라가 큰 홍역을 치른 적이 있습니다. 황우석 박사의 실험이 사기가 아니라 정말 성공이었다면 불치병 치료에 획을 그을만한 역사적 사건이 될 수도 있었습니다. 언젠가는 인체의 뼈, 호흡기, 간, 관절, 근육, 피부 등을 체외에서 복제하여 인간에 이식하는 것이 가능하게 될 것이라고 합니다. 늙는 것도 질병의 하나로 생각하는 세상, 죽지 않고 영원히 사는 세상을 만들고자 도전하고 있습니다. 컴퓨터에 이어 이제 휴대폰은 현대문명의 최고의 총아가 되었습니다. 이 작은 휴대폰으로 못하는 것이 없습니다. 기본적인 전화 기능 이 외에도 휴대폰으로 사진을 찍고 동영상을 촬영하고 음악을 듣고 게임을 하며 교통카드 대용되진 오래입니다. 인터넷을 하고 TV를 보며 은행 거래를 합니다. 과연 휴대폰 진화의 끝은 어디일지 모르겠습니다. 이제 우리의 생활의 모든 것이 이 손안에서 다 해결됩니다. ‘내 손안에 있소이다’가 바로 이것입니다. 가만히 생각해보면 이제 인류는 전능한 능력을 가진 것 같습니다. 우리도 인류가 이룩한 고도의 과학기술문명을 볼 때 제자들과 같은 심정이 되어 입이 닫혀지지 않습니다. " 샘~~ 저 신제품들 좀 보삼. 지대로 뽀대나지 않으삼?"
그러나 화려한 겉과는 다르게 인간의 내면 상태는 어떠합니까? 기술이 발전하여 초고속 인터넷이 가능해지자 이것으로 사람들은 무엇을 하고 있습니까? 어린이부터 늙은이까지 인터넷을 통해 음란 동영상을 탐닉하고 있습니다. 인간의 도덕성과 영성은 그만큼 더 타락했습니다. 이런 과학 기술의 출발점이 무엇이었는지 아십니까? 대부분 전쟁을 목적으로 발명되고 또 거기서 비약적인 발전을 이루게 되었습니다. 인터넷은 미국방성에 시작한 군사정보용 알파넷 프로젝트에서 시작되었습니다. 물리학의 성과를 이용해 지구를 수십 번 멸망시키고도 남을 가공할 원자 폭탄, 수소 폭탄을 만든 인류입니다. 이런 원자 폭탄의 발명원리를 들어보면 정말 기가 막힙니다. 도대체 어떻게 저런 생각을 해냈을까 그저 놀랍기만 합니다. 그런데 만약 정보 공학, 유전 공학이 지금보다 더 고도로 발달하면 과연 어떤 흉측한 괴물을 만들어 놓을지 누가 알겠습니까? 만일 인간의 본성이 그리스도의 피로 거듭나지 않는다면 인간 마음 속의 감추어져 있는 그 죄성이 낳은 괴물이 필연적으로 출현하고야 말 것입니다. 그리고 결국 인류는 그 괴물로 인하여 멸망하고야 말 것입니다. 그리스도 없는 인류의 과학은 허망한 결과로 끝날 것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인간의 타락은 과학 분야에서보다 교회 안에서 더 심각하게 나타납니다. 우리 시대 영성의 현주소는 어떠합니까? 정말 슬프고 안타깝게도 우리 시대 영성의 타락이 예수님 당시 성전의 타락에 못지 않다는 현실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교회의 설교에 지옥이라는 말이 사라져가고 있습니다. 그런 부담스러운 이야기는 왜 하느냐는 것입니다. 현대 교회 속에 죄를 용서하시는 하나님이 계실 뿐이지, 심판하시는 하나님은 없습니다. 한마디로 교회의 설교가 인본주의의 울타리 안에 갇혀있는 것입니다. 하나님께 드려져야 할 예배가 이제 사람을 기쁘고 즐겁게 하기 위한 예배가 되어가고 있습니다. 교회에 사람이 많이 모이니까 뭔가 거룩한 일이 벌어지는 있는 것 같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가 참 많습니다. 그들은 하나님께 예배하러 모이지 않고 자기와 가족의 축복과 안녕을 빌기 위해 교회에 나옵니다. 잘되는 나, 복된 우리 가족은 있지만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라는 말은 그야말로 말뿐입니다. 성공하기 위해 교회를 다닙니다. 교회 다니면 인생 성공이 반드시 따라와야 한다고 여깁니다. 그래서 뭔가 고난이 다가오면 은혜가 되지 않는다고 합니다. 주님을 위해 십자가를 지고 고난 받는 것, 이것은 우리 시대 분위기에서는 이미 퇴색되어버렸습니다. 이는 무서운 영적 타락입니다. 이런 타락은 성적인 타락, 도덕적 타락보다 더 무서운 것입니다. 왜냐하면 인간이 하나님을 자기의 시녀로 삼고자 하기 때문입니다. 세상이 타락하면 교회가 바로 잡아줄 수 있습니다. 그렇지만 교회가 타락하면 누가 교회를 바로 잡아줍니까? 인류는 이제 창조주 하나님, 구속주 하나님에 대한 경배를 잃어버렸습니다. 이것은 이제 인류가 곧 멸망할 때가 되었다는 징조입니다. 요즘 사람들은 저마다 어떻게 하면 고유가 시대의 이 경제 위기를 헤쳐 나갈까 고민합니다. 그러나 지금 더 급한 것은 영성을 잃어 버린 이 세상에 대한 하나님의 분노를 피할 길을 찾는 것입니다. 우리 시대는 인류 역사상 최대의 영적 위기 속에 들어와 있습니다.
3절을 보십시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과 함께 감람산으로 올라가셨습니다. 이곳에서 베드로와 야고보와 요한과 안드레가 조용히 예수님께 여쭈었습니다. "우리에게 이르소서 어느 때에 이런 일이 있겠사오며, 이 모든 일이 이루어지려 할 때에 무슨 징조가 있사오리이까?" 유대인인 제자들에게 성전의 멸망은 곧 인류의 종말을 의미했습니다. 종말에 관심을 갖게 된 제자들은 예수님께 두 가지 질문을 드렸습니다. ‘언제 인류의 종말이 오는가?’ 하는 것과 ‘그 때 무슨 징조가 나타나는가?’ 하는 것입니다. 이에 예수님께서는 먼저 인류의 종말을 알려주는 징조에 대해서 말씀해 주셨습니다.
첫째는 거짓 그리스도의 출현입니다(5,6). 5,6절을 보십시오. "예수께서 이르시되 너희가 사람의 미혹을 받지 않도록 주의하라 많은 사람이 내 이름으로 와서 이르되 내가 그라 하여 많은 사람을 미혹하리라" 거짓그리스도의 출현과 미혹은 첫 번째로 나타나는 말세의 징조입니다. 미혹이란 ‘deceive’ 즉 속이는 것입니다. 사람들을 속여서 바른 길에서 벗어나게 하는 것입니다. 오늘날 자칭 그리스도라고 말하는 거짓 메시아들이 1000명이 넘고, 우리나라에도 300여명에 이릅니다. 요 근래 구원만을 강조하는 박 옥수 계열의 구원파와 교주인 이 만희를 예수님께서 약속하신 보혜사라고 믿는 신천지 교회가 극성입니다. 신천지 교회는 말세에 택함 받은 자들이 144,000명이라고 말하고, 자신들만이 그 택한 자들이라고 합니다. 그리고 144,000명을 채우기 위해서 각 교회나 선교 단체에 추수꾼들을 보냅니다. 이들은 몰래 교회에 들어와서 사람들을 미혹하고 심어지는 교회 자체를 신천지 교회로 바꿉니다. 이단 중에 아무도 자기가 이단이라고 말하는 사람이 없습니다. 이런 이단들은 자신들의 가르침이 성경을 근거로 한다고 주장합니다. 그러나 그들은 성경을 인용하지만 성경대로 말하지 않고 자기들의 주장을 교묘하게 섞습니다. 드물지만 때로는 이들은 실제로 기적을 일으키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이단인지 모르고 쉽게 미혹을 당합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의 제자들은 이런 미혹하는 자들을 분별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거짓 그리스도에 미혹되는 사람들은 오랫동안 신앙생활을 하던 사람들이 많다는 것입니다. 이는 그들이 말씀에 기초한 믿음을 갖고 있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우리 시대 교회의 큰 문제 중에 하나는 그 신앙에 교리가 없다는 것입니다. 그냥 한 말씀 받고 은혜 받고 그때 그때 잘 지내면 되는 것 아니냐는 생각을 합니다. 그래서 진리의 체계가 아주 연약합니다. 자연히 이단의 논리적인 공격을 이겨낼 힘에 없습니다. 그래서 당하고 맙니다. 박옥수에게 가고 정명석에게 가고, 통일교에게 갑니다. 여호와 증인 앞에서 꿀 먹은 벙어리처럼 아무 말도 못합니다. 그래서 이단이 더욱 기세 등등합니다. 지방의 한 기독교 대학 기독 동아리에 유학 온 한 모슬렘 학생이 들어왔습니다. 서로 토론하는데 많은 학생들이 모슬렘 학생 한 명과의 변증에서 신앙중심이 흔들렸다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우리는 이를 심각하게 받아들여야 합니다. 기독교의 교리는 세상 모든 종교 교리 중 가장 뛰어나고 완벽합니다. 알면 알수록 놀랍습니다. 저명한 비교 종교학자들이 한 이야기입니다. 그런데 신자들이 뭐가 뭔지 모르고 그저 은혜 중심으로만 가다가 미혹 당하곤 합니다. 분별력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거짓 그리스도의 미혹을 받지 않기 위해서 우리는 성경 말씀을 제대로 배우고 읽어야 합니다. 성경 말씀을 제대로 배우고 읽을 수 있도록 돕는 사람이 바로 성경 선생입니다. 저와 여러분이 열심히 성경을 연구하고 공부하므로 양떼들을 사단의 미혹에서 구원할 수 있길 기도합니다.
둘째는 재난의 연속입니다. 7,8절을 보십시오. "난리와 난리의 소문을 들을 때에 두려워하지 말라 이런 일이 있어야 하되 아직 끝은 아니니라 민족이 민족을, 나라가 나라를 대적하여 일어나겠고 곳곳에 지진이 있으며 기근이 있으리니 이는 재난의 시작이니라" 전쟁은 말세의 징조입니다 인류 역사는 끊임 없는 전쟁의 역사였습니다. 최근 100 동안에도 수많은 전쟁이 있었습니다. 1차와 2차 두 차례 세계 대전을 겪었습니다. 숨돌릴 틈도 없이 곧이어 한국전쟁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이스라엘과 아랍 간 네 차례 중동 전쟁, 인도와 파키스탄 분쟁, 포클랜드 전쟁이 일어났습니다. 90년대 동서 냉전 체제가 종식되면서 사람들은 이제는 평화의 시기가 올 줄로 기대했습니다. 그러나 계속해서 보스니아 내전, 체첸 사태, 소말리아 내전, 동티모르 사태 등 더 많은 전쟁들이 빈번하게 일어나고 있습니다. 9.11 테러 이후에는 대테러 전쟁이라는 명분 하에 아프가니스탄과 이라크에서 참혹한 전쟁이 벌어졌습니다. 최근 이 지구 상에 단 하루라도 총성이 멈춘 날이 없었습니다.
우리를 두려움과 슬픔에 빠지게 하는 것은 전쟁과 테러의 소식만이 아닙니다 처처에서 지진과 기근이 발생합니다. 최근 대형 지진들이 잇달아 일어나고 있습니다. 일본 고베에서 대지진이 있었습니다. 지진에 철저한 대비를 해 온 일본이었지만 이 지진으로 6,500명이 죽었습니다. 2004년도에 인도네시아 수마트라 지역에서 일어난 지진 해일 즉 쓰나미로 말미암아 한 순간에 40만 명이 사망했습니다. 바로 올해 5월 12일 중국 쓰촨성에서 진도 7.8의 강진이 일어났습니다. 이 지진으로 인한 사망과 실종자수가 약 10만 명에 이르며 약 22조원의 경제 손실을 입은 것으로 추정하고 있습니다. 그러면 한국은 과연 지진의 안전 지대일까요? 우리나라에서도 지진의 강도가 점차 강하여 지고 발생 횟수가 증가하고 있습니다. 기상청 자료에 의하면 1978년- 1995년 사이 18년 동안의 매년 지진 발생횟수는 최저 6회 최고 29회 총 359회로 평균19.9회였으나 1996년- 2005년 사이 10년 동안에는 매년 최저 21회 최고 91회 총428회가 발생하여 평균42.8회였습니다.
기근 문제도 심각합니다. 기술 발전과 함께 농업 생산력은 크게 향상되었지만, 여전히 수많은 사람들이 굶어 죽어가고 있습니다. 작년에 세계적으로 약 2천만 명 정도가 굶어 죽었습니다. 이를 시간으로 환산하면 1.5초 동안에 한 사람씩 굶어 죽고 있는 셈입니다. 바로 우리 동포인 북한의 기근은 매우 심각한 수준입니다. 평화 재단 측에 따르면 북한을 그냥 내버려 두면 올해 5월부터 7월 사이에 약 20만 명이 굶어 죽을 수 밖에 없을 것으로 예상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배불러서 숟가락을 놓지만 그들은 먹을 것이 없어서 숟가락을 놓고 있습니다. 이런 기근은 부익부 빈익빈 현상에 기인하고 있습니다. 부유한 20% 사람들이 전 세계 물자의 70%를 소비하고 있습니다. 반면 가난한 사람 20%가 세계 물자의 1.6%를 사용하고 있습니다. 결국 기근의 원인은 인간의 죄악 때문입니다. 인간의 탐욕 때문에 한 쪽에서는 비만으로 인한 각종 성인병으로 죽고 한 쪽에서는 기근으로 굶어 죽어가고 있습니다.
우리는 이런 전쟁과 지진과 기근 등 재난에 대한 소식을 들을 때 두려운 생각이 듭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두려워 말라"고 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이는 재난의 시작이니라." 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재난의 시작을 영어 성경(NIV)에는 ‘The beginning of the birth pain’으로 기록하였습니다. ‘산통의 시작’이라는 말씀입니다. 여인은 새 생명을 출산하기 위해 해산의 고통을 겪습니다. 이처럼 전쟁과 지진과 기근과 같은 재난은 장차 영광스러운 하나님의 나라가 이루어지기 위한 필수적인 과정입니다. 새 하늘과 새 땅을 이루기 위한 산통입니다. 해산의 고통은 처음에는 주기가 길다가 나중에는 10분, 5분 간격으로 빨라집니다. 그리고 마침내 새 생명이 탄생합니다. 이와 같이 재난도 그 주기가 완만하다가 예수님의 재림이 가까울수록 빨라지게 됩니다. 세상의 종말이 가까울수록 많은 재난이 발생합니다. 그런 후에 예수님께서 큰 능력과 영광으로 재림하십니다. 새 하늘 새 땅이 도래하게 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재난을 당할 때 두려워하기보다 하나님 나라가 가까웠다는 소망을 가져야 하겠습니다.
셋째, 핍박이 많아집니다(9-13). 말세에 믿음으로 사는 제자들에게 무슨 일이 일어날까요? 9절을 보십시오." 너희는 스스로 조심하라 사람들이 너희를 공회에 넘겨주겠고 너희를 회당에서 매질하겠으며 나를 인하여 너희가 관장들과 임금 들 앞에 서리니 이는 저희에게 증거되려 함이라" 말세에 성도들은 핍박을 받습니다. 심지어 가장 가까운 가족들로부터도 핍박을 받기 때문에 더욱 고통스럽습니다.(12) 우리가 여름 수양회가 끝난 후 돌아가 "나 예수님 믿고 새 사람이 되었어요"라고 하면 세상 사람들이 어떤 말을 할까요? "축하한다. 정말 잘 되었다" 하면서 격려를 할까요? "너만 새 사람 되지 말고 나도 좀 변화되자" 이렇게 말할까요? 그래야 당연하겠지요. 하지만 많은 사람들이 도리어 우리들을 미워할 것입니다. "안타깝구나. 좋은 친구 하나 잃어 버렸네." "야! 너도 이제부터 개독교냐?" "차라리 그냥 성당에나 다녀라" 별의별 소리를 다 듣게 될 것입니다. 얼마 전 한 TV 방송국에서 ‘신의길, 인간의 길’이라는 다큐로 기독교를 평가절하하는 내용을 방영하였습니다. 많은 기독교 학자들이 그 내용의 어처구니 없음에 혀를 내두르고 또 분노하기까지 했습니다. 참으로 무지한 자들이 복음을 공격한 것입니다. 복음은 지난 2000년 동안 숱한 인본주의 학문의 공격을 받아왔지만 오히려 공격하던 이런 저런 류의 학문이 설득력을 잃고 스스로 퇴조했습니다. 그런데 그런 것을 다시 끌고 와 뭔가 새로운 것, 비밀이 있었다는 듯 방영을 하는 것은 일단은 무지이지만 사실 본문 속에 나오는 기독교에 대한 핍박입니다. 말세의 징조입니다. 이로 인해 진실된 많은 성도들이 핍박 받고 고통 받습니다. 그러면 왜 예수님께서는 성도들이 이런 핍박을 받도록 허락하십니까? 바로 이런 핍박을 통해 복음의 진리를 더 높이 드러내기 위함이요 더 넓게 복음에 대한 관심과 그 진리를 전파하기 위함입니다. 이런 방송 덕분에 이제 기독교가 오히려 세상에 대해 올바른 말을 할 기회를 갖게 된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런 핍박을 통해서라도 높은 지위에 있는 권력자들에게 복음을 전하게 하여 이들이 장차 재림하실 주님 앞에서 복음을 듣지 못했다며 변명하지 못하도록 증거 삼고자 하시기 때문입니다. 또한 우리가 핍박을 받을 때 내가 무슨 말을 해야 할까 미리 고민할 필요가 없습니다. 성령 하나님께서 친히 우리와 함께 하시고 우리 입에 할 말을 넣어주실 것입니다(11). 또한 예수님은 13절에서 나중까지 견디는 자는 구원을 얻을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이 약속을 믿고 염려하지 말고 핍박이 있을 때 믿음으로 끝까지 견뎌야 하겠습니다. 어떤 상황 가운데서도 이번 Summer Bible Camp에서 드린 믿음의 고백을 굳게 지켜 나갈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Ⅱ. 만국 복음 전파 (10)
그렇다면 제자들은 이 세상에서 어떤 삶을 살아야 합니까? 10절을 보십시오. "또 복음이 먼저 만국에 전파되어야 할 것이니라" 역사는 직선입니다. 역사는 순환하지 않습니다. 역사는 분명한 목표점을 향하여 지금 이 시간도 가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목표점에 도달하면 역사의 끝이 올 것입니다. 아담으로부터 시작하여 인류 구원 역사는 하나님께서 계획하신 대로 진행되어 왔습니다. 때가 되자 하나님께서는 예수 그리스도를 세상에 보내셨습니다. 예수님의 죽으심과 부활을 통해 복음을 완성하시고 그 복음을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역사 속에서 구원을 위한 주님의 일을 하십니다. 그리고 이 목적을 위해 역사를 주관하십니다. 그래서 세상 역사는 출렁이는 바닷물의 표층류와 같다면 하나님의 구원 역사는 도도히 흐르는 심해류와 같습니다. 우리는 세상 유명 정치인들이 세상을 주관하고 있는 것처럼 생각합니다. 그래서 부시를 원망하고 또 어떤 사람들은 이명박 대통령을 원망합니다. 그러나 그들은 하나님께서 쓰시는 도구에 불과합니다. 하나님께서는 구원의 역사를 완성하시기 위해 세상의 권력자들까지도 사용하고 계신 것입니다. 그들은 역사의 주역이 아닙니다. 그들은 조연에 불과합니다. 그러면 주역은 과연 누구입니까?
바로 복음을 전파하는 사람들입니다. 특별히 세상 모든 민족들에게 나가는 선교사들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구원 역사를 이루실 때 사람을 사용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초대교회의 복음 기초를 확립하시기 위해 사도 바울을 택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교회를 핍박하러 다메섹으로 가던 그를 강렬한 부활의 빛으로 만나 주셨습니다. 그리고 그가 3년 동안 아라비아 사막에 들어가서 복음을 깊이 연구하여 그 비밀한 세계를 깨닫기까지 기다리셨습니다. 그리고 그가 준비되었을 때 하나님께서는 그를 통해 복음진리의 견고한 기초를 놓으셨습니다. 그리고 그를 통해 아시아와 유럽을 거쳐 로마에까지 복음 진리를 전파하셨습니다.
복음이 만국에 전파되도록 하기 위해 하나님께서는 지금도 거대한 역사의 수레바퀴를 돌리고 계십니다. 이 역사에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주권대로 사람을 택하셔서 사용하십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택하심을 받아 만국 복음 전파 역사를 섬긴다는 것은 말할 수 없는 은혜요 특권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 역사에 우리 민족을 택하셔서 지금까지 사용하고 계십니다. 또 우리 모임을 통해 전세계 90개국에 1500여명의 선교사를 파송하게 하셨습니다. 그러나 지금까지 이룬 역사는 시작에 불과합니다. 아직도 중국과 아프리카, 중남미, 아시아와 이슬람지역에 복음을 듣지 못한 민족이 많이 남아 있습니다. 이들에게 복음을 전파하는 역사를 하나님께서는 우리 민족을 통해 이루고자 하십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또 복음이 먼저"라고 하심으로 천국 복음 전파가 가장 우선적으로 이루어져야 한다고 하십니다. 오늘날 사람들은 자신의 유익이 모든 것의 우선순위가 되고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먼저 복음이 전파되어야 한다고 하십니다. 이것은 우리가 모든 것을 포기하고 복음만을 전파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이는 우리의 우선순위의 문제라고 할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돈을 버는 것과 건강을 지키는 것 중에서 어느 것이 우선순위에 있는 것입니까? 돈을 버는 것도 중요하지만 건강을 지키는 것이 더욱 중요한 것과 같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직장 생활도 궁극적인 복음전파의 목적을 두고 감당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학업을 하는 것도 만국에 복음을 전파하시고자 하시는 하나님께 쓰임 받기 위해서 해야 합니다. 저희가 역사의 주관자 되시는 하나님께서 가장 중점적으로 이루고 계시는 만국 복음 전파 역사에 복음 전파자로 쓰임 받을 수 있길 기도합니다. 이런 사람들이야 말로 역사의 주역이며 진정한 하나님의 백성인줄 믿습니다. Hi! History Maker, 역사 창조의 주인공은 바로 여러 분들입니다.
우리는 지금 예수님의 재림이 임박한 말세지말(末世之末)에 살고 있습니다. 이러한 때 우리가 영적으로 깨어 있어야 합니다. 시대를 분별하고 예수님의 재림을 소망해야겠습니다. 무엇보다 만국 복음 전파 역사를 충성스럽게 감당하며 위대한 역사창조의 주역으로 살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